노예주는 주로 동물권 운동과 관련된 장면들을 그림으로 그려왔으며, 점차 도시 운동과 여성, 이주민, 장애인 운동 등의 소수자 운동으로 주제를 확장해나가고 있다. 나아가 이러한 사회운동의 맥락을 서로 교차시켜, 생태적 관점으로 도시운동을 해석하거나 여성으로서 도시운동을 바라보며 그 연결점을 제시하였다.
노예주의 회화에서 일관적으로 드러나는 태도는 폭력을 이야기하기 위해 우회로를 찾아 다가간다는 것이다. 즉, 폭력적 상황을 그대로 화면으로 옮겨오지 않으면서, 우리가 폭력에 대해 말할 수 있는 순간들을 가져온다. 따라서 고통을 대상화하거나 도구적으로 다루지 않고자하는 ʻ재현’에 대한 고민은 지속적으로 그의 작업 전반을 관통하고 있다. 이러한 태도는 그가 선택하는 장면 뿐만 아니라 회화적 방법론으로도 드러난다. 작가는 화면 안의 현실을 날카롭지않은 경계로 표현하며, 때로는 더욱 불분명하게 흐린다. 흘러내리거나 튄 물감, 회화적으로 강조된 터치, 변형된 색채 등의 표현기법은 해당 화면이 ‘그림’이라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작가는 그림을 그리면서, 회화로서 마련할 수 있는 장치들에 대해 계속해서 탐구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표현들로 그가 현장에서 포착한 특정한 감각을 불러일으키고자 한다.
또한 노예주의 작업은 사회구조적 문제를 다루고 있지만, 작가 자신의 주변에서 포착한 장면들을 그려낸다는 점에서 차별점을 갖는다. 그는 다양한 사회적 현장에 활동가로서 직접 참여해왔으며, 작가에게 현장은 일상적 풍경이다. 따라서 그는 한국 사회에서 일어난 부조리한 사건들을 하나의 ‘스펙터클’이 아닌 일상적 관점으로 바라본다. 이러한 관점은 기존의 민중미술을 현 세대로서 새롭게 해석하는 시도로 볼 수 있다. 강하고 선명한 메세지가 과거 프로파간다 미술의 특징이었다면, 노예주는 미약한 연대, 복잡하게 얽힌 교차의 가능성에 주목한다. 기존의 운동은 노동권과 같은 단일 쟁점이 주를 이루었지만, 최근의 현장에는 다소 느리고 어렵더라도 다층적인 쟁점들을 함께 교차하여 가는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 예를 들어, 철거현장에도 퀴어, 여성, 동물, 장애인, 비국민이 함께 있음을 드러내는 것이다. 이러한 현장에서의 경험은 자연스럽게 작가 작업세계로 녹아든다.